[일본 2013 공동련대회 참관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작성일13-09-02 16:30 조회6,590회 댓글0건본문
그는 여전히 청년 활동가였습니다
글 함께걸음 이애리 기자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하는 일본 ‘차별과 싸우는 공동체 전국연합(이하 공동련)’ 대회가 지난 8월 24일부터 26일까지 니가타(Niigata)현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이곳에 저와 이태곤 소장님, 서동운 국장님, 그리고 리드릭 김정렬 원장님이 한일 교류 차원으로 연구소 대표로 참가하였는데요, 니가타현이 방사능 유출지역인 후쿠시마와 가까워 아주 조금 많이(!) 염려가 되었지만, 회도 많이 먹고 건강히 잘 다녀왔습니다.
공동련은 약 40년 전에 전국의 10개 정도의 장애단체들의 연합으로 결성된 이후로 일본에서 장애로 인한 차별에 대해 싸워왔고 1984년, 즉 30년 전부터는 대회를 개최하기 시작해 매년 정기적으로 일본 전역에서 활동하는 장애운동 활동가들이 모이고 있습니다. 공동련 대회는 현재까지도 전국의 장애운동 활동가들과 장애단체, 사회적 기업 등이 모여 차별 없는 세상, 더불어 살고 일하는 세상 만들기 위한 운동, 일본 장애운동에 있어 전초기지 역할을 해오고 있습니다.
공동련대회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월간 함께걸음 9월호 또는 인터넷 함께걸음(www.cowalk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738)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의 4박 5일 일정을 마치고 연구소에 돌아오니 동료들이 '어땠냐, 뭐가 가장 좋았냐'라는 질문을 하더군요. 저는 일본사람들도 좋았고, 회도 참 맛있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사이또 겐조’ 씨를 만난 것이었습니다.
올해 나이 66세인 사이또 겐조 씨는 공동련 사무국장이자 공동련의 창립 멤버로, 중증발달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일하는 공동사업소 '와빠'의 대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는 정신장애를 가진 아들을 둔 장애인부모이기도 하면서, 자신 또한 몇 년 전부터 하루에 3번씩 투석을 해야 하는 신장장애인이기도 합니다.
일정이 조금만 힘들어도 금세 얼굴이 하얗게 변하는 사이또 씨지만, 대회 내내 발달장애인 친구들과 손님들을 손수 챙기고 위트있는 농담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은 물론, 젊은 사람들에게 맡기고 뒷짐 지고 앉아 있을만한 자리에서도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소소한 그의 헌신들이 저의 눈에 자주 포착되곤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누군가에게 이것을 해라, 저것을 해라 명령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주변에서는 자연스럽게 그를 따랐고 서로를 챙기더군요. 그는 알았던 것이 아닐까요? 강압이나 명령이 아니어도 서로를 믿고 존중할 때, 모두가 함께 할 때 세상은 돌아간다는 것을요.
이처럼 사이또 씨에게서는 30년 넘게 거대한 조직을 이끌어 온 사람에게서 느껴질 만한 그 어떤 고집이나 보수적인, 권위적인 리더의 모습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부드러움 속에 카리스마 있는 분이었죠. 그와 동시에, 인터뷰에서 사이또 씨가 한 말을 통해 그가 장애운동 역사를 이끌어온 리더임과 동시에 도전과 비전을 품은 청년 활동가의 심장을 가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장애계뿐만 아니라 젊은이들도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 경제의 풍요로움을 향유할 수 있는 시대에 살게 되면서 앞으로의 시대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어려움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가 하는 도전의식이 점점 약해지는 것이 사회 전반적으로 보이고 있다. 필요한 제도를 만들어가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차별과 싸워나가는 것에 대한 자각을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 장애인을 위한 장애인의 제도 안에 빠져버리게 되는 것이다. 장애인이고 아니고의 벽을 넘어가서 차별과 싸워나가야 한다."
저 또한 오늘날 사회 전반적으로 많은 젊은이들에게 도전과 투쟁, 열정과 비전이 사그라진 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제 모습 안에서도 안정지향주의, 안일함을 발견할 때가 참으로 많고요. 사이또 씨의 말처럼 여전히 필요한 제도가 많지만, 이전보다 다양한 제도가 생겨나고 풍요로워지면서 그 제도로부터 안정감을 얻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우리가 이뤄낸 그 제도라는 올가미 안에 우리 스스로 갇히는 꼴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사이또 씨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저의 좁은 생각으로는 장애운동, 인권활동가들에게는 ‘인권의 다림줄’, ‘청년의 심장’, ‘비전의 깃발’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인권이라는 기준이 반드시 필요하고, 청년의 심장을 가지고 도전하고 투쟁하며, 우리의 비전의 깃발을 높이 세우면서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일본에서 만난 사이또 씨. 제가 그분에 대해 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확언하는 것이 다소 조심스럽지만, 짧게나마 사이또 씨를 보면서 그는 줄곧 좁고 먼 외길을 걸어왔으면서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고 끊임없이 도전한, 투쟁정신으로 무장한, 청년의 심장을 가진 멋진 리더처럼 보였습니다.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청년이고, 청춘일까요?
사이또 씨, 그는 여전히 청년의 심장을 가진 청년 활동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