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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전국장애인대회 및 장애열사정신 계승을 위한 추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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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6-07-06 16:02 조회11,5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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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정신계승, 장애해방쟁취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지난 26일, 전국장애인대회 및 추모제 열려 

 

 
0305074122.gif 우리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는 지난 24일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이 주최한 "제1회 전국장애인대회"에 참여했다. 우리 연구소는 소장님을 비롯해 총 20여명이 참석해 추모제까지 성공적으로 치러내고 밤늦도록 서로의 손을 잡고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참여한 활동가 - 김정열 소장님, 박숙경,김정하,목미정,조병찬 활동가(이하 인권국), 박성희,배장훈,오영철,이수지(이하 정책실), 임소연,박성준,이태준(이하 문화센터), 조은영(월간 함께걸음), 김광표,양여경,엄해열,이미정,이우람,정주현,함미선,허성현(장애우인권지기) 이상 총 2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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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5074122.gif 전국장애인대회를 마치고 추모제를 위해 시청으로 가는 도중 전경들과 약간의 물리적 충돌은 있었으나 최옥란 열사 추모제 사상 처음으로 세종로 편도 전차선을 점거하고 약식집회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의 노력이 헛수고가 아니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0305074122.gif 특히 오후 5시부터 진행한 추모제는 얼마전(3월 16일) 영면하신 故이현준 활동가도 열사의 반열에 같이 올라 참여한 활동가들을 더욱 숙연하게 만들었는데, 추모제 도중 활동가들이 오열을 해 추모제에 참여했던 다른 활동가들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기도 했다. 故이현준 활동가에 대한 추모의 글은 후배 활동가인 오영철 활동가가 낭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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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5074122.gif 추모제에서 낭독한 열사들을 위한 弔詩

 

눈이 부신 봄날이여

꽃송이 송이 다시 피어 봄입니다.
쓸쓸한 겨울을 지나
말라붙은 대지를 뚫고 그렇게 다시 피어 봄입니다.

이름없이 스러져간 동지들의 무덤에도 다시 봄이 왔겠지요.
밀리고 밀려 영영 세상에서 추방당한 님들의 가슴에도 봄이겠지요.
온몸 불살라 항거한 동지들의 마음에도 이제 다시 봄이겠지요.

액세서리 만들어 시장에 납품하며 다섯 살 아들의 재롱을 보아야할 김순석 열사
목을 축여줄 한모금의 물을 마시려고 하늘같이 높은 문턱과 싸우고
골목골목마다 박힌 식당 문턱에서 허기를 참아야했던 열사
높으신 서울시장님 앞으로 편지지 다섯장을 빼곡히 유서내용으로 채워야했던 열사

유행가 테이프 실은 삼륜 오토바이에 삶을 맡기고
승냥이같은 노점단속반 피해 이리저리 떠돌던 최정환 열사
제발 스피커와 밧데리통은 돌려달라고 구청직원에게 애원하던 열사
심한 모멸감으로 시너를 뿌린 채 휠체어와 함께 온몸 타들어간 열사

손님의 오돌뼈 주문에 환한 미소로 답하던 이덕인 열사
십여미터 망루에서 삶이 깃든 자신의 포장마차가
포크레인에 짓밟히는 모습을 지켜봐야했던 열사
장애인의 몸으로 온몸에 피멍이 들고 밧줄로 묶인 채 아암도 바닷가에 떠오른 열사

제주에서 서울까지 노동권을 위해 손바닥 물집을 터트리며 행진했던 정태수열사
저항하고 투쟁하는 반골의지로 세상을 올곧게 바꾸려했던 열사
구치소에 면회온 동지들에게 걱정말라고 털털하게 웃음짓던 듬직한 열사
살아남은 자 조직하라던 생생한 열사의 외침이 아직도 귓가에 들려옵니다.

가난한 장애여성의 삶으로 세상에 저항했던 최옥란 열사
보건복지부 장관 집앞에 떡고물처럼 주어진 수급자 생계비를 내던진 열사
더 이상 그네들에게 빼앗길 것 없어 가장 처절하게 당당했던 열사

제몸하나 가누기 힘든 중증장애인의 몸으로 독립생활을 실천한 이현준 열사
온몸 근육 말라가면서도 제몸보다 세상을 더 걱정하고 투쟁하던 열사
산화한 열사의 숭고한 정신, 현장에서 투쟁하며 이어가겠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열사들,
그러나 시들어 부는 바람에 떨어지는 꽃잎처럼
정권의 광풍에, 사회의 냉대와 멸시에
이름모를 수많은 동지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습니다.

발밑에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 이제 다시 봄입니다.
차가운 겨울을 지나
말라붙은 대지를 뚫고 그렇게 피어 다시 봄입니다.

이름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동지들, 잘못된 역사에 온몸으로 항거한 장애열사들
이제 당신들의 고통화 희생이 새싹으로 다시 피어나려 합니다.

이땅에 발을 딛고 사는 우리들이 하겠습니다.
물이 되고, 거름이 되어 당신들의 소중한 뜻 이어가겠습니다.
방패에 막히고, 쇠사슬에 목이 죄여 와도
우리들 가슴에 동지들의 뜨거운 투쟁의 열기를 품고 전진하겠습니다.

열사여, 장애해방 투사여,
이름없이 스러져간 사랑하는 동지들이여
장애해방 새 세상에 다시 살아오소서.

 

0305074122.gif 故이현준 활동가를 위한 추모의 글(낭독 : 오영철 활동가)

 

故이현준 활동가를 보내며....

 

 이현준, 그는 2005년 3월 16일 새벽 1시 주체적인 삶의 방식과 밤을 새워 고민했던 장애문제의 무거운 짐과 장애해방을 위해 처절하게 싸웠던 몸짓들을 슬며시 내려놓고 우리 곁을 떠나갔습니다.  

 그는 이제 우리와 함께할 수 없는 먼 곳으로 떠나가서 오늘 이 자리, 이 시간, 우리와 함께 호흡하며 장애해방을 외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장애 해방 운동을 멈추지 않는 한 그는 우리와 늘 함께 있을 것입니다. 

 중증의 장애를 가졌지만 누구보다 장애 운동에 열심이었던 한 활동가가 숨졌습니다. 이현준 그의 중증장애는 바로 이 자리에 있는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일 것입니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이동에 제한을 당하고, 인권을 무시당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하게 하는 거대한  장벽에 맞서 싸웠던, 지금도 싸우고 있는 바로 우리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는 장벽에 맞서 처절하게 싸우다가 스러져 갔습니다. 새삼 그의 삶을 되돌아 볼 수밖에 없는 것은 그가 생전에 직면하며 고민했던 문제들이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바로 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현준활동가는 생전에 중증의 장애 때문에 10년 동안 밖에 나오지 못하고 집에서만 기거하면서 글을 써왔습니다. 즉 그는 글을 아주 잘 쓰는 글쟁이였습니다. 그는 글로서 사람들 앞에 당당히 섰습니다. 그는 글로써 장애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기만의 글을 통한 장애 운동 방식을 정착시켜 가면서 개인적, 대중적 시각에서 장애계에 현안이 되고 있는 문제와 이슈들을 항상 글로서 강하게 비판하고 자신의 입장들을 밝혀 나갔으며, 행동이 필요할 경우에는 현장에 나가 적극적인 운동을 계속해 왔습니다.

 그는 기자와 정책실 간사로 일하면서 다양한 정보습득과 많은 방대한 자료축적을 통해서 장애계 여러 이슈와 정책적 대안들을 구체적이고 창의적인 내용들로 만들어 사회와 국가에 강하게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전동휠체어를 타게 되면서부터는 이동권이 장애우의 삶을 규정한다고 외치면서 이동권 쟁취 투쟁에 앞장섰습니다. 또 최근에는 IL 패러다임을 몸소 실천한 독립생활 운동가로 활동했습니다.  

 생전의 그는 누구보다 자기 삶의 주인이 되기를 갈망했고, 실제로 의타적이 아닌 자기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39년 만에 부모로부터 독립했습니다. 업혀 다녀야 했던 그가 직장도 지하철을 이용해 매일 출퇴근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2년 정도의 독립생활 과정은 사회적, 제도적으로 서비스가 정착되지 않는 상황에서 실천한 힘겨운 삶의 투쟁이었고, 목숨을 담보로 하는 처절한 몸부림이었습니다. 생전의 그는 단 한 번도 독립생활을 후회하지 않았다 나의 선택이 옳았다고 말하곤 했지만 중증장애인에 대한 서비스와 배려가 전혀 없는 이 사회의 냉정함이 그를 서서히 죽음으로 몰고 가고 있다는 것을 그도 몰랐고 우리도 몰랐습니다.

 우리가 만난 고 이현준 활동가는 따뜻하고 착한 평범한 남자였습니다.  그는 우리와 함께 하는 동안 잠잠히 그리고 묵묵하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장 낮은 자세와 겸손함으로, 우리 곁에 있어준 장애운동의 동지이자 활동가였습니다. 고 이현준 활동가는 살아계실 때까지 성년후견인제도에 집중하면서 성인정신지체인과 정신장애인들의 재산권 보호와 권리를 내용으로 하는 활동과 대안들을 만들었던 드러나지 않는 믿음직한 활동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제 우리 곁에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중증장애인 삶에 필요한 다양한 법적, 제도적 대안뿐만 아니라 중증장애인의 사회적 참여를 위한 문화권,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 등의 수많은 장애문제에 대한 글들과 자료와 정보를 통한 장애운동의 실천의 모습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떠났습니다. 

 마지막으로 그와 함께 지내면서 그는 정말 인정이 넘치는 남자, 그래서 젊은 친구들과 직장동료와 후배인 들로부터 힘을 받는다는 남자. 그 마지막까지 “장애차별과 장애해방을 위해 아직도 우리는 풀어야할 것이 너무 많다”며 고민했던 것들을 이제 여기 모인 우리가 함께 풀어가겠습니다.  사랑하는 동지들이여


 

0305073934.gif 사진출처 및 관련기사 : 위드뉴스(http://www.withnews.com)

편집 시간 : 2005-03-30 06:42:04.857
작성부서 : 420 공동투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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