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지체인의 형사조사과정에서 드러난 인권침해
장애의 유무에 상관없이 살아가다가 형사조사를 받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나라 정서상 경찰서, 검찰, 법원 이런 곳은 쉽고 편안하게 다가갈수 있는 곳이라기 보다는 왠지 무섭고, 가려면 긴장되고, 무언가 자신이 죄인같은 기분이 들기 마련입니다.게다가 본인이 무언가 조사를 받게 되면 더더욱 긴장하게 되지요. 그런데 만약 부모나 보호자가 대동한 것이 아닌 본인이 혼자 조사를 받게 된다면 정신지체인의 경우 어떨까요?
현재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상,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해 보호방침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데, 몇가지 사례를 통해 그 문제를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례 1.
이 상담은 지난 11월 어머니가 전화를 주셨던 상담입니다. 아들은 고2, 현재 일반학교 특수학급에 재학중입니다. 정신지체 3급을 가진 이군은 수업시간에 장애의 특성상 잘 앉아있지 못하고 근처를 돌아 다니는 습관이 있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날도 수업시간에 교실을 빠져나와 학교근처의 모교회안에서 배회하고 있었고, 낯선 학생이 와서 계속 배회하고 있으니까 관리하는 아저씨가 파출소에 신고를 했습니다.
파출소에 신고를 하면서 그전에 교회에서 성경책이 없어지거나, 자판기의 돈을 누가 훔쳐가기도 하기 때문에 안그래도 교회관리하는일에 있어 예민한데 이 학생이 와서 얼쩡거리니까 파출소에서 이 학생을 데려가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파출소에서는 이 학생을 데려다가 조사를 했는데 관리인의 말을 빗대어 교회에서 무얼 훔치지 않았느냐고 자꾸 추궁을 하였습니다. 보통 성인들도 파출소나 경찰서에 가면 위축되고 긴장되어서 본인의 권리주장을 잘 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인데, 이 정신지체를 가진 학생은 경찰이 윽박지르고 솔직히 말하지 않으면 큰일난다고 겁을 주니까 다 자기가 훔쳤다, 그전에도 경찰서에 조사받은 적이 있다 등을 진술하고 도장을 찍었습니다.
그때까지 부호자인 부모도 그 사실을 연락받지 못했고, 학교도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어머니의 주장은 잠깐만 대화를 해봐도 장애인인줄 알 것인데 어떻게 보호자에게 연락도 없이 조서를 다 꾸밀수 있으며, 조사과정에서 이군에게 얼마나 겁을 주었으면, 부모를 만났을 때 경기를 하고 경찰서 근처만 가려고 해도 자지러지고 정신착란증세를 일으키냐는 것입니다. 본인이 집전화번호등을 진술하지 않았더라도 그 근처 학교의 교복을 입고 있으니 학교로 연락했으면 금방 알수 있었을 텐데 그 연락조차 경찰에서는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 사건은 검찰로 송치되어 현재 기소유예처분이 내려진 상태인데, 이군이 잡힐 당시 교회근처를 배회했을뿐 성경책이나 자판기 돈을 훔친것도 아닌데, 현장연행된것도 이해할수 없는데다가 조사과정에서 무리하게 여죄(짓지 않은 죄)를 물어 조서를 꾸민점, 꾸민후 한글을 잘 이해하기 힘든 사람에게 조서에 도장을 찍게 한점, 실제로 훔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음에도 무혐의처리가 아닌 기소유예처리가 된점 등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사례 2.
여수에서 일어난 사건인데, 이 사건은 정신지체인 형제가 개도둑으로 몰린 사건입니다. 지난 12월 26일, 여수에 사는 안군형제들은 아버지(아버지도 정신지체인임)가 갑자기 아프다고 하여 새벽 1시넘어 병원응급실에 갔다가 1시간정도 치료를 받고 돌아오던 중, 그 근처 S농장을 지나치다가 묶여있는 개가 귀여워 쓰다듬고 있었는데, 이를 본 농장주인은 개도둑이 분명하다고 판단하고 달려나와 안군형제중 한명에게 폭행을 가해 턱뼈가 뿌려지는 상해를 입었습니다.
농장주인은 평소 개도둑이 많아 전에도 개를 잃어버린적이 있었기 때문에 항상 무기를 숨겨놓고 살았다며 폭행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들이 개도둑이 분명하다고 주장했고, 폭행을 당한 안군은 집으로 오던 중 개가 있어 귀엽다고 쓰다듬고 있는데 개가 짖었고, 집주인이 나와 주먹을 휘둘렀고, 아주머니를 시켜 칼을 들고 나와 가슴과 목에 대고 협박했고, 무조건 무릎꿇고 살려달라고 빌었다며 개를 훔치려는 것이 아니었다고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 사건은 26일 일어났고, 이날 집으로 돌아온 아들이 쓰러지자 아들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아버지 안씨는 경찰서에 신고를 했고 관할 파출소에 출두해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피해신고를 하러간 이들 장애인형제들을 절도미수혐의로 긴급체포하고 절도혐의를 완강히 부인하자 경찰이 가혹행위를 통해 억지 자백을 받아냈다고 이들 형제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안군의 주장에 의하면 경찰은 조사에 방해가 된다며 아빠와 형, 농장주인을 모두 밖으로 나가 있으라고 한 뒤,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무조건 개를 훔쳤지라고 묻고 훔치지 않았다고 하면 군대식 기합인 원산폭격-땅에 머리를 박고 있는 것, '꼴아박아'라는 표현씀-을 시켰고, 머리도 세대 맞았으며, 개도둑놈이라고 욕을 했다고 합니다. 물론 경찰은 조용히 조사하기 위해 방으로 데리고 갔을뿐 가혹행위는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문제가 되었던 그방은 CCTV가 비춰지지 않는 별도의 방이었습니다. 게다가 글을 읽지 못한다고 밝힌 이들형제는 조서내용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채 경찰이 겁을 줘 진술서에 손도장을 찍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가족은 아버지와 이들 형제는 모두 정신지체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10년전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교회의 목사님과 집사님이 이 가족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특히나 이들을 돌보고 있는 집사님은 전에도 파출소에 잡혀간 적이 있었는데 안군형제들을 데리러 가면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을 봤다며, 경찰은 이 형제들을 사람취급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결론 일단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문제점을 정리해보면,
첫째, 법적 보호자없이 형사조사과정을 받는데 있어, 불리하게 진술할 수 있습니다. 질문의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으며, 분위기상 말을 못할 수 있습니다.
둘째, 조사과정에서 가혹행위가 일어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자신의 권리보호를 주장하기가 힘듭니다.
셋째, 여죄를 물어 죄를 불리고 그에 따라 억울하게 가중처벌 될 수 있습니다.
넷째, 죄를 인정하지 않으면 오히려 불리하다, 자백하지 않으면 구속하겠다, 합의하지 않으면 불리하다 등 사리분별이 어려운 장애인에게 직접적 혹은 간접적 협박을 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 이러한 전과정은 경찰조사뿐아니라 검찰 조사에서도 일어날 수 있고, 또한 법정에서도 증언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까요?
첫째, 장애특성을 고려한 형사조사과정이 필요합니다. 현재 청각장애인의 경우, 번역사의 자격으로 수화통역사가 동석하는 것 외에 아무런 조치가 없습니다. 시각장애인의 경우, 조서를 읽어주고 도장을 찍어줄 사람이 필요하겠구요, 청각장애인도 통역에 따라 내용전달이 불리할수도 있기 때문에 공인할수 있는 통역인이 있어야겠고,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법적 보호자가 대동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기 위해선 형사소송법이 일부 개정되어야 합니다.
둘째, 경찰, 검찰, 법관등 관련자들의 장애에 대한 이해와 장애인의 인권에 대한 사전 합의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각종 교육등을 의무화하고 장애인을 조사할때는 특별히 장애특성을 염두에 둘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셋째, 넓게는 형사조사과정도 그렇지만 재판과정에서도 장애특성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앞에서 말한 사례 두가지는 현재 진행중에 있으며, 당사자가족들은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하고, 해당지역에 장애인단체와 인권단체가 이문제에 협력해서 개입하고 있으며, 지역언론이나 중앙의 언론들에게 이 문제를 알리고 있습니다. 또한 앞으로 법개정운동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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